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20세기의 마지막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실에 대해
온통 정치논리에만 몰입하여… 시기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주장대로 노벨평화상이 돈으로 매수해서 탈수있는 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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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은 이미 13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었다.
- 김대중의 노벨평화상은 단지 남북화해와 한반도긴장완화 때문에 받은것이 아니다
- 전생애를 독재자들의 수많은 살해위협과 협박에도 굴하지않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맞서싸워온 그의 공로와
- 1994년 일촉즉발의 남북한 핵전쟁위기 상황에서 (북한은 1993년 이미 핵을 개발 )
김대중 아태평화위원장은 미국에게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특사로 적극 추천하였으며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카터가 김일성과의 극적담판을 이끌어내
남북한이 공멸할뻔한 전쟁을 막은데 기여한 공로..
-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동티모르사태 해결등에 크게 기여하는등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동티모르 대통령이었던 오르타의 증언이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했던 3년동안, 20 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20 만명은 당시 동티모르인구의 무려 1/3 이었다 )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인도네시아군에게 동티모르국민 10 만명이 더 죽었을것입니다.
APEC 정상회의때 빌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동티모르사태와 관련하여 보여주신
지도력에 감사를 드린다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클린턴대통령은 자신 보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비로서 김대통령의 지도력을 알게되었습니다."
- 오르타 동티모르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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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동티모르는 2001년 8월 제헌의회 선거를 했고
구스마오가 이끄는 독립혁명전선이 압승함
2002년 5월 동티모르는 완전독립 구스마오 대통령 취임, 오르타 외무장관 취임...
1996년 벨로주교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오르타는 훗날 동티모르 대통령도 된다
그리고 동티모르는 시내의 가장 큰 중심도로를 '한국 친구의 길' 로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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